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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08 09:28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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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크에서 대낮에 길가에서 야권지도자 실종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지난달 대통령 선거 후 부정선거 시위가 연일 벌어지는 벨라루스에서 야권 관계자들이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벨라루스 여걸 3인방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로 피신하지 않은 채 야권 구심점 역할을 한 마리아 콜레스니코바가 괴한들에 납치됐다.

7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코레스니코바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사라졌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벨라루스에서는 대선후보였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의 선거캠프 활동가로 활약했다. 이외에도 베로니카 체르칼로 등이 현직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 맞서 선거캠프를 꾸렸었다.


베로니카 체르칼로(왼쪽부터),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마리아 콜레스니코바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공식 선거결과에서는 티하놉스카야 선거캠프는 10.1% 득표에 그쳐 루카셴코 대통령(80.1%)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벨라루스 시민들은 실질적인 승자는 티하놉스카야로 보며 연일 시위를 벌이며 맞서고 있다. 선거 후 티하놉스카야는 잠시 억류된 뒤 체스칼로와 함께 리투아니아로 피신했다. 이 때문에 벨라루스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콜레스니코바는 티하놉스카야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동행복권파워볼

벨라루스 야권에서는 콜레스니코바가 억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벨라루스 경찰 등은 그의 체포를 부인하고 있어, 소재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민스크 중심부에서 마스크를 쓴 남성들이 콜레스니코바를 미니밴에 밀어넣은 뒤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전화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드잡이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봤더니, 일반인 복장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콜레스니코바를 미니밴에 밀어넣고 있었다"고 전했다.

콜레스니코바 외에도 조정위원회 등에서 활동중인 안톤 로드녠코프와 이반 크라프초프 등도 실종됐다.

티하놉스카야는 콜레스니코바 등 야권 관계자가 실종된 것과 관련해 "벨라루스 정부가 이제 테러에까지 나섰다"면서 "이번 납치는 조정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사람들을 겁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더 시민들을 겁박할수록 더 많은 시민이 거리에 나설 것"이라며 "모든 수감자를 석방하고 공정한 재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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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카카오 안산 데이터센터가 입지할 부지 위치 /사진제공=카카오

카카오가 안산에 자체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자체 데이터 센터를 통해 카카오톡을 비롯해 카카오 주력 사업들의 IT(정보기술) 자원 관리를 효율화하고 나아가 대외 클라우드 사업 진출을 노린 양면 카드로 풀이된다. 춘천 데이터센터 ‘각’에 이어 세종에도 제2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 중인 네이버와 달리, 카카오는 방대한 정보기술(IT)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외부 데이터센터를 임대해 사용해왔다.
카카오 첫 데이터센터 안산에 둥지튼다…2023년 완공 목표
카카오는 7일 경기 안산 상록구 사동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캠퍼스혁신파크 내 1만8383㎡(약 5561평) 규모 부지에 자체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4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6EB(엑사바이트=600만테라바이트) 규모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서버 12만대 규모의 친환경 데이터 센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카카오가 짓게 될 친환경 데이터센터는 서버 냉각과 운영에 쓰이는 전기와 물 소비량을 절약하기 위해 빗물을 모아 냉각수로 활용하고 냉동기나 항온항습기 등이 설치된다. 또 블랙아웃 등 비상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도록 비상 발전기와 무정전전원장치(UPS)도 등의 시설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는 올해 연말까지 건축 설계를 마무리하고 내년 중 첫 삽을 떠 2023년까지 데이터센터를 완공한다는 목표다. 금융 자문은 카카오페이증권이 참여한다. 카카오는 이날 경기 수원 경기도청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윤화섭 안산시장, 한양대 김우승 총장, 카카오 여민수 대표이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7일 경기 수원 경기도청에서 열린 카카오 데이터 센터 유치 협약식. 왼쪽부터 윤화섭 안산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여민수 카카오 대표이사, 김우승 한양대 총장. /사진제공=카카오
카카오톡 등 전산자원 효율화…대외 클라우드 사업 전면화 ‘예고’
카카오는 데이터센터를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를 비롯한 4차 산업과 클라우드 사업을 위한 전초 기지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카카오는 이미 카카오톡과 포털 다음을 비롯해 수많은 IT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다. 서비스마다 코로나19(COVID-19) 이후 트래픽 양이 급증하고 있으며, 신규 서비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자체 데이터센터를 두는 게 서버 및 데이터 자원 관리에 보다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코로나19 시대 잦은 카카오톡 불통 사태로 서비스 안정화 차원에서도 자체 데이터센터 및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돼왔다.파워볼엔트리

대외 기업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하는 관측도 있다. 카카오는 하반기 클라우드 사업진출을 앞두고 있다. ‘카카오아이클라우드’라는 이름으로 기업용 클라우드사업을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클라우드 사업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기업형 메신저 ‘카카오워크’도 이르면 이번달 중 출시할 계획이다.

클라우드 사업을 전면화하기 위해선 독자적인 데이터센터를 갖추는 게 유리하다. 이미 카카오 외에도 국내 클라우드 시장의 주요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실상 카카오가 후발주자인 셈이다. 네이버, NHN 등이 데이터센터 확대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네이버와 NHN 등은 각각 세종과 경남 김해에 제2 데이터 센터를 짓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아마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국내 리전을 두고 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안정성과 확장성, 효율성, 가용성, 보안성이 확보된 IT 분야 최고의 데이터센터를 설계하는 것이 목표”라며 “데이터센터 건립은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지수 기자 100js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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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아들 특혜의혹]
20일이상 연속 청원휴가 낸 카투사, 2017년엔 추미애 아들 포함해 2명
軍 “정보 보호 위해 전역때 폐기”… 2018∼19년 3명 자료는 남아 있어
추미애 아들측 “두번째 휴가 연장할 때 구두 승인받고 이메일로 서류 보내”

카투사(KATUSA·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복무하면서 20일 이상 휴가를 간 병사가 연속해서 다시 휴가를 간 경우는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까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27)를 포함해 모두 5명으로 조사됐다. 2017년 휴가를 간 서 씨와 또 다른 병사 A 씨 등 2명의 입원확인서 등 의료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2018∼2019년 휴가자 3명의 의료기록은 보관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2016년 3월 부분 개정돼 시행 중인 군 관련 규정은 민간의료기관의 입원확인서와 진료비계산서(영수증) 자료 보관 기간을 5년으로 명시하고 있다. 서 씨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가 석연치 않게 사라진 셈이다.

7일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까지 미8군 한국군 지원단 장병 가운데 20일 이상 휴가자가 연속으로 휴가를 더 받은 사람은 총 5명이다. 군은 2016년 12월 1일부터 국방인사정보체계를 도입했고, 그 이전에 전역을 한 장병의 휴가 기록 등은 보관하고 있지 않다.

서 씨는 총 23일 동안의 휴가 중 20일은 청원휴가로, 마지막 3일은 개인휴가를 썼다. 나머지 4명은 모두 청원휴가였다. 청원휴가는 장병 본인이 부상 또는 질병으로 요양이 필요할 때 등 지휘관의 승인으로 가는 휴가다.

2017년 미8군 한국군 지원단에서 20일 이상 청원휴가를 얻은 장병은 서 씨와 A 씨 등 총 2명으로 군은 현재 서 씨의 입원확인서 등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서 씨가) 밖에서 진료받은 진단서가 (군에) 없다”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면담일지, 상담일지 이런 데는 기록이 돼 있는 것으로 제가 확인을 했다”면서도 입원확인서 등의 의료기록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A 씨는 ‘반월연골 종물 제거 치료’를 목적으로 총 30일 휴가를 갔다. 하지만 군은 윤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에서 “(해당 병사의) 진단서는 존안돼 있지 않다”면서도 “당시 지원반장은 ‘진료 관련 서류를 제출받았으나 개인정보보호 목적으로 전역과 동시에 모두 폐기하였다’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군은 2018∼2019년에 휴가를 간 장병 3명의 입원확인서 등은 규정에 따라 보관하고 있다.

육군규정 160 ‘환자관리 및 처리 규정’ 제20조엔 ‘민간의료기관 진료내용 자료 유지를 위해 소속부대는 당사자에게 입원기간이 명시된 입원확인서, 진료비계산서(영수증)를 제출토록 해 비치대장을 작성하고 5년간 보관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 때문에 군이 서 씨의 자료를 보관하지 않은 것은 군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서 씨의 변호인단은 6일 진단서 등을 공개하며 “진단서, 의무기록사본증명서, 입원기록, 입퇴원확인서 등 관련 서류 일체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 씨 측 현근택 변호사는 7일 서 씨가 개인휴가를 쓴 두 번째 휴가 연장에 대해 “필요한 것을 먼저 구두로 승인받고 서 씨가 이메일로 서류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에 따르면 서 씨는 복무 기간 동안 다른 카투사 병사의 평균 휴가일수(33.3일)에 비해 25일이 많은 총 58일의 휴가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위은지·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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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김예은 기자] 정은표와 아내가 달라진 집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7일 방송된 tvN '신박한 정리'에서는 정은표 가족의 집이 깔끔하게 바뀌었다.

정은표 가족은 12년째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첫째 지웅과 둘째 하은이 자라고, 늦둥이 지훤이 태어나면서 짐 정리도 많이 하지 못했다고. 정은표는 "정신없이 살다 보니 뭔가 치우긴 하는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실은 과거 방송에서 나온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첫째 지웅의 방은 침대와 책상이 너무 가까워 문제였다. 지웅이 공부에 집중하고자 독서실 책상을 들였지만, 효과는 없었다고. 또 하은의 방에는 과거 '배우' 활동 시절 받은 핑크색 선물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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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막내 지훤의 방이었다. 부엌 옆 창고 공간을 지훤의 방으로 만들어줬던 것. 매트리스와 책상이 들어갔을 뿐인데도 공간이 전혀 없었다. 또 정은표는 개인 공간이 없어 건조기 앞 간이책상에서 대본 공부를 해야만 했다.

이어 정은표 가족은 신박정리단과 함께 집 비우기에 나섰다. 정은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트로피를 제외한 후 모두 비우기로 결심, 기념 사진을 남겼다. 신박정리단이 떠난 후에도 비우기는 이뤄졌다. 정지웅 가족은 '신박한 정리' 사상 처음으로 23박스를 버렸고 해 놀라움을 안겼다.

집 정리가 완료된 후, 가족들이 변화된 집을 찾았다. 먼저 거실을 본 정은표는 "우리집 아니야"를 외쳤고, 아내는 울컥해 눈물을 보였다. 양쪽 벽을 채웠던 책장은 모두 사라지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주방 역시 동선에 맞게 정리된 모습. 결국 정은표의 아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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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의 방도 깔끔하게 바뀌었다. TV장이 책장으로 변신했고, 침대와 책상 위치도 달라졌다. 담담했던 정은표는 달라진 지웅의 방에 눈물을 쏟았다. 하은의 방도 화이트톤으로 깔끔하게 바뀌었다.

잡동사니 옆에 위치해 있던 작은 막내 지훤의 방은 훨씬 넓어졌다. 잡동사니가 있던 공간은 지훤의 공부방이 됐고, 작은 방엔 최소한의 가구만 들여놨다.

안방 역시 이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은표가 공부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도 마련됐다. 부부는 이러한 방의 모습에 오열했다. 특히 아내는 "이 사람이 배우 생활을 30년 넘게 하고 있는데 대본 볼 곳이 없었다. 근데도 공간이 없으니까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살았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dpdms1291@xportsnews.com / 사진 = tvN 방송화면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다. 여우가 자신은 천제가 정한 백수의 왕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호랑이가 여우를 앞세우니 과연 모든 짐승들이 도망쳤다. 그러나 짐승들이 도망친 것은 여우가 아니라 뒤에 버티고 있는 호랑이가 무서워서였다.





“1승 올리기 정말 힘 드는군.”

2000년 시즌을 맞은 송유석의 입에서 단내가 났다. 짜증이 절로 치밀 정도로 힘든 행군이었다. 24게임에 등판했으나 성적은 고작 1승 4패 2세이브. 팀을 옮기면서 정말 한 번 힘차게 날아보자 했는데 도대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선발투수가 아닌데다 나이까지 35세에 이르렀으니 매번 승리를 바라볼 수는 없을 터. 하지만 한때는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하지 않았던가. 참으로 그리운 ‘아, 옛날이여’였다.

1987년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타이거즈에 입단한 송유석에게 관중의 박수 갈채는 멀고도 멀었다. 연습생인 터에 공의 위력도 별로였으니 1군 무대는 한낱 꿈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야구가 좋았던 그는 마당쇠처럼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주전들의 뒷전에서 틈나는 대로 훈련하며 부지런히 프로 물을 습득한 덕분에 제법 공이 무거워져 입단 4년여 만인 91년에는 선발로 나서기까지 했다.

투창 선수 출신의 투수. 마치 창을 던지듯 공을 뿌리는 특이한 폼이었으나 경험이 쌓이면서 제법 관록이 붙었다. 91년 11승을 올리며 상승의 틀을 마련하더니 93년부터는 에이스 급에 준하는 성적을 올렸다.

93년 11승 1세이브, 94년 10승 7세이브, 95년 10승 3세이브. 3년 연속 두 자리 수의 승리를 올렸으니 ‘마당쇠 출신’으론 엄청나게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송유석의 성공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96년 2승으로 뚝 떨어지더니 LG로 옮겨서 뛴 97년부터 99년까지 3년간 총 10승밖에 올리지 못했다. 90년 중반의 호시절을 잊지 못한 송유석은 99년 시즌이 끝난 후 이적을 요구, 한화에 둥지를 틀었으나 ‘화려했던 옛날’은 이미 다 지난 일이었다. 2~3년차 시절처럼 막일을 하며 근근이 마운드 살림을 꾸려갔다.

그의 갑작스러운 비상과 추락. 송유석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배경이 있었다.

한창 잘나가던 93년부터 95년까지 3년간 막강한 실력자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그 시기는 ‘무적’ 선동열이 타이거즈의 마무리로 뛰던 시절이었다.

송유석의 공도 비교적 좋았던 시절이었지만 선동열이 버티고 있어 강한 면모를 발휘할 수 있었다. 타이거즈를 상대한 팀은 지고 있는 상황에서 6~7회로 넘어가면 불펜 쳐다보기에 정신이 없었다.

선동열이 구원투수로 등판하기 전에 경기를 뒤집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페이스를 잃은 섣부른 공격과 그것을 간파한 송유석의 재치 있는 수비. 결과는 대부분 송유석의 승리였다.

송유석 역시 선이 뒤에 버티고 있으므로 편안하게 던졌다. 일단 5회만 넘기면 승리는 보증수표였다. 1사 2,3루의 위기에도 걱정이 없었다. 선동열이 지체 없이 뛰어 들어 막아 줄 것이니 오히려 원하는 바였다. 선동열은 급하다싶으면 3~4이닝까지도 구원했다.홀짝게임

자기보다 훨씬 강한 지원군을 가진 선봉장. 송유석의 승리 공식은 오직 ‘송유석’이 아니라 ‘송유석+선동열’이었다. 송유석이 선의 후방 지원을 받은 3년 동안엔 총 31승을 올렸다. 그러나 선동열이 선발로 뛴 87년부터 92년까지는 6년간 18승에 그쳤다.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로 떠나거나 자신이 팀을 옮긴 96년부터 4년 6개월여 동안엔 16승을 했다. 선동열로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3년이 앞뒤의 10년 성적과 맞먹는다. 선동열은 입단 후 고생하면서도 야구를 무척 사랑했던 송유석에게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기사제공 마니아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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