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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08 09:34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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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취소됐지만 일부 강행…‘서인도의 날’ 해맞이 행사서 총기 난사 벌어져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뉴욕에서 매년 노동절에 열리는 대규모 캐러비언 문화축제인 서인도의 날 비공식 행사 주베르(J’Ouvert)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6세 어린이가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파워볼

7일(현지 시각) 미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브루클린 크라운하이츠 지역의 한 교차로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6세 소년이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년의 어머니(47) 등 성인 4명도 다리, 발 등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뉴욕포스트

서인도의 날에는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이는 서인도 제도에 속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고국의 음악, 의상, 음식을 소개하는 전통 문화축제다. 주베르는 서인도의날 퍼레이드 전에 하는 일종의 해맞이 행사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관련 행사가 취소됐지만, 그럼에도 소수가 모여 행사를 비공식적으로 열고 즐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서인도의 날 행사에는 총격 사건과 칼부림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6년에는 주베르 때 총격으로 2명이 숨졌고, 흉기 난동 등으로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날도 총격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뉴욕경찰 측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2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 몇 명이 이 사건에 연루됐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경찰관계자는 “수사는 초기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뉴욕포스트는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를 담은 영상을 입수해 공개했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행진을 하는 장면이 나오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도망치고 숨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부축을 받는 장면 등이 나온다. 부상자 중 한명인 켈리 바트홀드(34)는 언론 인터뷰에서 갑자기 총성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자마자 도망쳤다”고 했지만, 자신이 들은 세번째 총성때 총을 맞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고 전했다. 그는 발목에 총을 맞았다.

[이옥진 기자 june1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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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수업 도중 숨진 아르헨티나 엠프레사 대학의 파올라 데 시모네 교수. /트위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던 아르헨티나의 한 대학 여교수가 원격 수업 도중 쓰러져 숨졌다.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도우려고 해도 손을 쓸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이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영국 더선 등 외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아르헨티나 엠프레사대학(UADE)의 파올라 데 시모네(46) 교수는 지난 2일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을 이용해 수업했다. 40여 명의 학생들이 데 시모네의 수업을 들었다.

데 시모네는 수업 도중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했다. 학생들이 구급차를 보내기 위해 집 주소를 물어봤지만, 데 시모네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숨이 막혀 말을) 할 수 없다(I can’t)”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데 시모네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였다. 경증환자여서 입원 치료 대신 자가격리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 “코로나 증상이 4주째 이어지고 있다”고 썼다. “의사인 남편은 매일 녹초가 돼 집으로 돌아온다. 코로나가 갈수록 확산하고,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썼다.

데 시모네의 죽음은 ‘마지막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이 소셜미디어에 동영상을 올리며 뒤늦게 알려졌다. 한 학생은 “데 시모네는 폐렴에 걸렸다고 했고, 우리는 이전 수업보다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며 “어느 순간부터 그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넘기지도 못했고,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심지어) 균형을 잃었다”고 했다.


UADE가 발표한 파올라 데 시모네 교수 애도 성명. /UADE 트위터

대학 측은 공식 성명을 내고 “15년간 우리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가르친 디 시모네 교수는 열정이 넘치는 교육자였다”며 “디 시모네 교수의 사망을 애도하며,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존스홉킨스대학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서는 45만명 이상의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도 9000명을 넘었다.

[오경묵 기자 not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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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아들 특혜의혹]
20일이상 연속 청원휴가 낸 카투사, 2017년엔 추미애 아들 포함해 2명
軍 “정보 보호 위해 전역때 폐기”… 2018∼19년 3명 자료는 남아 있어
추미애 아들측 “두번째 휴가 연장할 때 구두 승인받고 이메일로 서류 보내”

카투사(KATUSA·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복무하면서 20일 이상 휴가를 간 병사가 연속해서 다시 휴가를 간 경우는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까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27)를 포함해 모두 5명으로 조사됐다. 2017년 휴가를 간 서 씨와 또 다른 병사 A 씨 등 2명의 입원확인서 등 의료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2018∼2019년 휴가자 3명의 의료기록은 보관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2016년 3월 부분 개정돼 시행 중인 군 관련 규정은 민간의료기관의 입원확인서와 진료비계산서(영수증) 자료 보관 기간을 5년으로 명시하고 있다. 서 씨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가 석연치 않게 사라진 셈이다.파워볼게임

7일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까지 미8군 한국군 지원단 장병 가운데 20일 이상 휴가자가 연속으로 휴가를 더 받은 사람은 총 5명이다. 군은 2016년 12월 1일부터 국방인사정보체계를 도입했고, 그 이전에 전역을 한 장병의 휴가 기록 등은 보관하고 있지 않다.

서 씨는 총 23일 동안의 휴가 중 20일은 청원휴가로, 마지막 3일은 개인휴가를 썼다. 나머지 4명은 모두 청원휴가였다. 청원휴가는 장병 본인이 부상 또는 질병으로 요양이 필요할 때 등 지휘관의 승인으로 가는 휴가다.

2017년 미8군 한국군 지원단에서 20일 이상 청원휴가를 얻은 장병은 서 씨와 A 씨 등 총 2명으로 군은 현재 서 씨의 입원확인서 등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서 씨가) 밖에서 진료받은 진단서가 (군에) 없다”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면담일지, 상담일지 이런 데는 기록이 돼 있는 것으로 제가 확인을 했다”면서도 입원확인서 등의 의료기록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A 씨는 ‘반월연골 종물 제거 치료’를 목적으로 총 30일 휴가를 갔다. 하지만 군은 윤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에서 “(해당 병사의) 진단서는 존안돼 있지 않다”면서도 “당시 지원반장은 ‘진료 관련 서류를 제출받았으나 개인정보보호 목적으로 전역과 동시에 모두 폐기하였다’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군은 2018∼2019년에 휴가를 간 장병 3명의 입원확인서 등은 규정에 따라 보관하고 있다.

육군규정 160 ‘환자관리 및 처리 규정’ 제20조엔 ‘민간의료기관 진료내용 자료 유지를 위해 소속부대는 당사자에게 입원기간이 명시된 입원확인서, 진료비계산서(영수증)를 제출토록 해 비치대장을 작성하고 5년간 보관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 때문에 군이 서 씨의 자료를 보관하지 않은 것은 군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서 씨의 변호인단은 6일 진단서 등을 공개하며 “진단서, 의무기록사본증명서, 입원기록, 입퇴원확인서 등 관련 서류 일체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 씨 측 현근택 변호사는 7일 서 씨가 개인휴가를 쓴 두 번째 휴가 연장에 대해 “필요한 것을 먼저 구두로 승인받고 서 씨가 이메일로 서류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에 따르면 서 씨는 복무 기간 동안 다른 카투사 병사의 평균 휴가일수(33.3일)에 비해 25일이 많은 총 58일의 휴가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위은지·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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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최승혜 기자]

홍석천이 이태원의 마지막 식당을 폐업한 이유를 밝혔다.

9월 7일 방송된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서는 홍석천이 이태원의 마지막 식당을 코로나19 여파로 폐업했다고 밝혔다.

이날 홍석천은 “제가 예전에 패혈증을 앓았다. 그때 너무 힘들었는데 앞만 보고 달리면 쓰러질 것 같아서 어렵게 휴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안진용 기자는 “제가 얼마 전 공식적으로 홍석천 씨와 인터뷰를 했다. 홍석천 가게의 적자가 매월 3,500만원이라고 하더라”며 “20년 전 커밍아웃하고 사람들이 날 외면했을 때 이태원만이 날 품어줬다고 하시더라. 가게 폐업을 끝까지 고민하셨다”고 밝혔다.

홍석천은 “가게 마지막 날까지 직원들과 웃으며 인사했다. 그런데 이틀 후 동네 주민들께서 제 가게에 저 문구를 붙여놨다며 사진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고 털어놨다.(사진=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캡처)

뉴스엔 최승혜 csh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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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다. 여우가 자신은 천제가 정한 백수의 왕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호랑이가 여우를 앞세우니 과연 모든 짐승들이 도망쳤다. 그러나 짐승들이 도망친 것은 여우가 아니라 뒤에 버티고 있는 호랑이가 무서워서였다.





“1승 올리기 정말 힘 드는군.”

2000년 시즌을 맞은 송유석의 입에서 단내가 났다. 짜증이 절로 치밀 정도로 힘든 행군이었다. 24게임에 등판했으나 성적은 고작 1승 4패 2세이브. 팀을 옮기면서 정말 한 번 힘차게 날아보자 했는데 도대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선발투수가 아닌데다 나이까지 35세에 이르렀으니 매번 승리를 바라볼 수는 없을 터. 하지만 한때는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하지 않았던가. 참으로 그리운 ‘아, 옛날이여’였다.

1987년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타이거즈에 입단한 송유석에게 관중의 박수 갈채는 멀고도 멀었다. 연습생인 터에 공의 위력도 별로였으니 1군 무대는 한낱 꿈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야구가 좋았던 그는 마당쇠처럼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주전들의 뒷전에서 틈나는 대로 훈련하며 부지런히 프로 물을 습득한 덕분에 제법 공이 무거워져 입단 4년여 만인 91년에는 선발로 나서기까지 했다.

투창 선수 출신의 투수. 마치 창을 던지듯 공을 뿌리는 특이한 폼이었으나 경험이 쌓이면서 제법 관록이 붙었다. 91년 11승을 올리며 상승의 틀을 마련하더니 93년부터는 에이스 급에 준하는 성적을 올렸다.

93년 11승 1세이브, 94년 10승 7세이브, 95년 10승 3세이브. 3년 연속 두 자리 수의 승리를 올렸으니 ‘마당쇠 출신’으론 엄청나게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송유석의 성공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96년 2승으로 뚝 떨어지더니 LG로 옮겨서 뛴 97년부터 99년까지 3년간 총 10승밖에 올리지 못했다. 90년 중반의 호시절을 잊지 못한 송유석은 99년 시즌이 끝난 후 이적을 요구, 한화에 둥지를 틀었으나 ‘화려했던 옛날’은 이미 다 지난 일이었다. 2~3년차 시절처럼 막일을 하며 근근이 마운드 살림을 꾸려갔다.

그의 갑작스러운 비상과 추락. 송유석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배경이 있었다.

한창 잘나가던 93년부터 95년까지 3년간 막강한 실력자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그 시기는 ‘무적’ 선동열이 타이거즈의 마무리로 뛰던 시절이었다.

송유석의 공도 비교적 좋았던 시절이었지만 선동열이 버티고 있어 강한 면모를 발휘할 수 있었다. 타이거즈를 상대한 팀은 지고 있는 상황에서 6~7회로 넘어가면 불펜 쳐다보기에 정신이 없었다.

선동열이 구원투수로 등판하기 전에 경기를 뒤집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페이스를 잃은 섣부른 공격과 그것을 간파한 송유석의 재치 있는 수비. 결과는 대부분 송유석의 승리였다.

송유석 역시 선이 뒤에 버티고 있으므로 편안하게 던졌다. 일단 5회만 넘기면 승리는 보증수표였다. 1사 2,3루의 위기에도 걱정이 없었다. 선동열이 지체 없이 뛰어 들어 막아 줄 것이니 오히려 원하는 바였다. 선동열은 급하다싶으면 3~4이닝까지도 구원했다.

자기보다 훨씬 강한 지원군을 가진 선봉장. 송유석의 승리 공식은 오직 ‘송유석’이 아니라 ‘송유석+선동열’이었다. 송유석이 선의 후방 지원을 받은 3년 동안엔 총 31승을 올렸다. 그러나 선동열이 선발로 뛴 87년부터 92년까지는 6년간 18승에 그쳤다.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로 떠나거나 자신이 팀을 옮긴 96년부터 4년 6개월여 동안엔 16승을 했다. 선동열로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3년이 앞뒤의 10년 성적과 맞먹는다. 선동열은 입단 후 고생하면서도 야구를 무척 사랑했던 송유석에게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파워볼사이트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기사제공 마니아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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